[골프타임즈=박하 작가] 하지혜는 그런 함봉호가 재미있다는 투의 측은한 눈길로 쳐다본다. 하지혜의 눈에는 마치 장난치기 좋아하는 소년의 악동 기질이 다분히 숨겨져 있다.

“하기는 그 쪽에서는 모를 수도 있겠네요. 더욱이 남자들이란 여자 쪽 돌아가는 얘기를 대부분 모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남자들이란 형광등이란 별명이 딱 제격이지요.”

하지혜는 여전히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글쎄, 그렇다 치고…, 어서 본론부터 얘기해 봐. 궁금해 죽겠네.”

함봉호는 급한 성질을 못 이기고 다급해진다.

“아마, 조사국장, 조만간 물 먹을 걸요?”

“그래? 왜 그런데?”

“우리 여직원들은 이미 다 아는 얘기인데, 정말 남자 직원들은 느려도 한참 느리구나.”

“그건 그렇다 치고….”

“한 국장이 아르바이트 여학생을 건드렸데요?”

“엉? 한 국장이?”

“네.”

“나이도 한창 많은데? 아마 쉰 살은 되었지. 어느 부서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거기 조사부에서 일하던….”

“그래? 정말 큰일 날 일이군.”

“그런데, 문제는 그 딸 같은 아르바이트 학생과 결혼한다지 뭡니까?”

“악!”

함봉호는 순간 탄성을 내지른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 데 대한 충격을 가눌 수가 없다. 하지만 하지혜는 태연하다. 이미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정도는 별것 아니라는 투이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차이일까. 함봉호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설마 그럴 리가? 그 한 국장에게는 자식들도 있고, 아내도 있었는데….”

“그 아내와는 이미 이혼했어요. 그리고 자식들은 전처가 키우기로 하고….”

“그래? 정말 어이없는 일이군.”

“그 소문은 이미 많이 퍼져 있는데, 여태 모르는 함 선배님이 좀 이상하시네요.”

“글쎄,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 우리 부서는 외부와 접촉할 일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그리고 나 또한 워낙 조용하니까….”

“하기는 그렇겠군요. 하지만 회사 일에 너무 무관심하지 마세요. 선배님도 밖에서 들리는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던데요.”

“갑자기 웬 뜬금없는?”

“헛소리가 아니에요. 제가 그래도 함 선배님을 존경하니까, 이런 말이라도 해주는 거지요.”

“고맙군. 구체적으로 말해 봐.”

함봉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하지혜에게 바짝 다가간다.

좀은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앞선 탓이다. 마침 레스토랑 실내등의 조명이 갑자기 어두워진 원인도 있다. 시간이 10시가 넘으면 ‘베이스캠프’의 조명등 불빛은 한층 어두워진다. 레스토랑 주인이 연인들을 위해 도입한 배려이며 상술이다.

“문제는 함 선배님을 씹는 놈들이 많다는 데 있어요. 선배님이 일을 잘하는 데다, 부수 확장 실적도 좋아 사람들이 질투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영원한 동지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어요.”

“…….”

함봉호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혜가 의외로 정곡을 찌른 탓이다.

“그런데, 함 선배님처럼 아무리 착하면 뭐해요. 한 국장이나 박 실장이든, 대부분의 간부 사원들이 바람피우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래도 회사는 잘만 돌아가는데….”

“사원들이 바람피운다고 회사가 잘 안 돌아갈 리가 없지. 암, 당연하지.”

“선배님도 한통속이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 아니야.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구.”

“정말 남자들이란 다 속물들이라니까.”

“난, 정말 아니야. 오해하지 마.”

“아니, 바람피우는 게 뭐가 어때서요? 선배님도 바람 한번 피워 보세요. 전 어때요?”

“엉? 지혜, 술 취했나?”

“이 정도 가지고 뭘 취해요? 다만 기분이 알딸딸한 게 좋네요.”

“에이, 난 그런 데 관심 없어.”

“어머,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 보죠?”

“하이고, 우리 지혜 같은 미인을 누가 마다할까…. 그냥 우리는 편한 사이잖아.”

“호홋, 정말 선배님은 순진하시다. 구본하와는 영 딴판이네.”

“아니, 구본하에 대한 소문도 잘 아나 보지?”

“그럼요. 여자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요.”

“캬! 정말 놀랄 일이군. 그래, 구본하에 대한 소문은 어떤 건데?”

“어머, 아직도 그걸 몰라요? 함께 근무하면서도….”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나?”

“그래도 너무 했다.”

하지혜가 또 다시 눈을 예쁘게 흘긴다.

그러면서 목이 타는지 맥주잔을 한잔 비운다. 그 바람에 함봉호도 맥주를 따라 마신다.

“그나저나 구본하가 바람을 피운다 이 말이지?”

“그럼요.”

“그게 누군데?”

“여향미 부장하고요.”

“엉!? 설마 그럴 리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잖아요.”

“글쎄, 뜬소문이라 해도 그건 너무했다. 두 사람이 나이 차도 있고….”

“연애하는 데 나이 차가 무슨 상관이에요?”

“혹시 박 실장이라면 몰라도….”

“물론 박 실장과 여 부장이 한때 뜨거운 관계였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회사 돈을 자기 맘대로 주무르는 박 실장이 나이 든 여 부장을 여태껏 좋아하겠어요? 보다 젊고 싱싱한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이거, 계속 지혜에게 배우는 느낌인 걸….”

“호홋, 후배에게서도 배울 것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요.”

“그래, 그건 당연할 말이야.”

“그리고 선배님, 구본하를 조심하세요. 그 사람 못된 사람이에요. 앞에서는 함 선배님을 챙기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얼마나 욕하는지 몰라요.”

“아니, 그런 소리는 어디서?”

“이래 봬도 제가 여직원들 사이에서 정보통으로 통하잖아요.”

“그런가?”

“그래서, 그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죠. 아무튼 구본하 씨에게 속의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누설하지 마세요. 그 사람 정말 얄팍한 사람이라고요.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전형적인 이중인격자이죠. 뒤에서 얼마나 호박씨를 까는지….”

하지혜의 목소리가 좀 전보다 훨씬 흐트러져 있다.

분위기에 취해 제법 많이 마신 술이 이제야 오르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하지혜의 눈동자가 힘없이 흐트러진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버틸 만한 눈치이다.

함봉호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혜가 방금 전에 ‘전 어때요?’라고 한 말이….

사실 하지혜와 간단히 한잔 정도는 많이 했지만, 이 정도로 많은 술을 마신 적은 없다. 두 사람은 그만큼 부담이 없는 사이였다.

“지혜, 이제 그만 마시지. 좀 취한 것 같은데….”

“어머, 선배님! 제가 걱정돼요? 책임지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

“아니야,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지혜네 집이 동부이촌동이던가?”

“걱정 마세요. 아무리 술에 취해도 집은 잘 찾아가니까요.”

“허, 참….”

함봉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혀를 끌끌 찬다.

“아무튼 우리 회사 사람들…,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다들 제 정신이 아니라고요. 선배님 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왕따시키고…. 일도 못하는 놈들은 팔짱낀 채 눈치만 보고…. 하여간 웃기는 짬뽕들이라고요.”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 세상 일이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닌가?”

“피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모양이지요.”

“…….”

“화나셨어요? 후훗, 죄송해요.”

“뭘 그런 거 가지고….”

“히히, 역시 선배님은 좋은 분이에요. 하지만 제게는 그렇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약한 모습 보이지 마세요. 좀 냉정하게 대하라고요. 그렇게 착하게 구니까 놈들이 얕보는 거라고요.”

“…….”

“저번에 선배님이 주간지를 다부수 확장했을 때도 국장에게 보고하지 말고 직접 박 실장을 찾아갔어야 했어요. 그랬다면 당연히 선배님의 주가가 올라갔을 텐데…. 그러면 다른 놈들이 질투한다거나 시기할 수도 없었을 텐데….”

“허, 그런가? 정말, 이제부터는 지혜를 다시 봐야겠는걸.”

“농담이 아니에요. 다부수를 확장할 때 우리 회사 사장 도장과 생명보험회사 사장 도장을 찍었잖아요? 그렇게 큰 회사 대 회사의 계약인데, 당연히 기획실장을 찾아가 보고했어야지요. 그러면 보다 더 떳떳하고, 회사 법인카드를 쓰는 것도 훨씬 자신 있었을 텐데….”

하지혜는 술 탓인지 말이 술술 잘 나온다. <계속>

박하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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