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우올림픽 펜싱 에페 경기에서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한 박상영(우측) 선수(사진=MBC 화면 캡처)

판세를 뒤집는 역전의 통쾌한 재미, 헝그리정신으로 감정에 눌려 눈물범벅된 모습만 보다 위기에서 빛난 ‘축제를 즐기자’ 그 자체가 반전이라 유쾌...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달아오른 가마솥 안에 들어앉은 듯 혹서가 연일 계속됩니다. 염천시하(炎天時下)라는 말이 실감이 갑니다. 에어컨을 껴안고 살다시피 하지만 전기요금누진제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더욱 짜증지수를 올립니다. 다행히 올림픽기간이라 열대야에 엮어지는 스릴만점의 역전드라마에 더위를 잠시 잊습니다. 오늘은 역전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역전(逆轉)이란 판세를 거꾸로 뒤집는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출발점에서 고관대작이나 부잣집 아이로 태어나면 평생 부귀하고, 달동네 출신 아이는 평생 가난하게 살면 대다수 사람의 삶이 허망해집니다. 방금 끝난 올림픽 남자 100m 달리기에서 우사인 볼트가 경쟁자보다 스타트가 훨씬 늦었지만 중반부터 스퍼트해서 앞선 경쟁자를 따돌리고 결승점을 가장 빨리 통과했습니다.

처음 출발한 선수가 반드시 끝까지 1등을 하란 법이 없습니다. 후발주자의 막판 뒤집기가 가능하기에 구경꾼들은 더욱 각본이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경기에 열광하게 됩니다.

지난주엔 신나는 막판 뒤집기 역전극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펜싱의 박상영선수와 사격의 진종오선수가 바로 쾌거의 주인공입니다. 박상영선수는 에페경기 금메달 결정전에서 10:14로 뒤져 1점만 더 잃으면 패배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내리 5점을 따 경기를 뒤엎었습니다. 진종오선수도 공기권총 50m 결선 1차 시리즈에서 하위권으로 출발해서 한때 6위까지 밀려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가 차츰 저력을 발휘하여 마지막 9차 시리즈에서 판세를 뒤엎고 금메달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평소 스포츠국가주의에 냉담했던 필자도 이 두 젊은이의 뒤집기에는 흥분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라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의지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필자는 박상영선수의 경기 후 인터뷰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기자가 어떤 전략으로 경기에 임했냐고 물었습니다. 박상영선수는 따로 전략이 없었고 언제 다시 올림픽에 뛰겠냐며 세계인의 축제를 즐기자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답게 솔직한 현답(賢答)입니다. 그리고 10:14로 뒤질 당시 금메달을 의식해 덤비던 욕심을 버리고 평상심을 유지해서 자기만의 경기방식을 회복했다고 감회를 밝혔습니다. 필자도 이 나이되도록 갖기 어려운 마음가짐이라 대견합니다. 여태까지 헝그리정신으로 무장해 끝내 금메달을 따고선 벅찬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범벅된 모습만 보다가 박상영선수의 인터뷰는 그 자체가 반전이라 유쾌합니다.

영화도 반전이 있어야 재미있고, 인생은 고난을 극복해야 성과가 값진 법입니다. 중국에서도 인생역전을 이룬 인물이 즐비한데 고대 인물로는 사마천(司馬遷)이 손꼽힙니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 태사령(太史令)을 지냈던 사마천은 『사기(史記)』를 집필하면서 「금상본기(今上本紀)」의 기사가 무제의 심기를 건드려 눈밖에 나있었습니다. 그런 터에 사마천이 흉노에 투항한 장수 이릉(李陵)을 변호하자 무제가 대노하여 사마천을 투옥시켰다가 끝내 사형에 처하도록 명했습니다. 다행히도 당시에는 사형을 충당할 두 가지 방식이 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50만 냥의 속전(贖錢)을 내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궁형(宮刑)을 자청하는 것입니다.

궁형은 고대의 5대 혹형(酷刑)에 속하는 형벌로, 남성의 생식기인 고환을 제거하는 형법입니다. 유학(儒學)을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한나라 당시에 무엇보다 효(孝)가 지상지고(至上至高)의 가치이었고, 효의 최고 가치는 전종접대(傳宗接代) 곧 대(代)잇기를 해 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부모의 장례를 잘 치르는 것입니다. 궁형을 당하면 전종접대가 불가능하므로 가장 큰 불효이자 가장 큰 수치였습니다. 거금의 속전을 낼 형편이 못되었던 사마천은 치욕을 무릅쓰고 궁형을 청했습니다. 사마천의 나이 49세 때의 일입니다. 그로선 부친의 뒤를 이어 『사기』라는 방대한 역사서를 완성해야할 꿈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사마천은 몇 번이나 자신을 “궁형을 당한 인간(刑餘之人)”이라고 자조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누구도 사마천을 궁형을 자청한 불효자라고 손가락질하거나 불구자라고 조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성으로서 감내키 어려운 치욕을 극복하고 불굴의 의지로 동양 최고의 사서를 써낸 위대한 역사가로 기억되고 또한 높이 추앙받고 있습니다.

역전도 전기(轉機)가 필요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대패한 여당은 민심의 향배를 되돌리고 싶겠고, 대승한 야당들은 민심의 역전을 허용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급한 쪽은 여당 같은데, 새로 선출된 여당대표가 선출 다음날에 “대통령과 맞서는 것을 정의로 인식한다면 여당 소속의원 자격이 없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여권의 일사불란한 정권운영을 강조하는 취지일지 몰라도 총선에서 멀어졌던 민심을 더 멀리 내쫓는 발언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대통령이라도 틀리면 맞서야 정의라고 말했어야 옳습니다. 여당도 반전의 계기가 있어야 역전이 가능합니다. 어쩌면 다가올 대선에선 대역전극을 보는 재미가 난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는 삶속에서 행여 늦었다고 포기하거나 여의치 못한 부분이 있다면 좋은 계기를 찾아 역전을 이루길 축복합니다. 판세를 뒤집는 역전의 재미가 더욱 통쾌하고 짜릿합니다. 염천증선(炎天贈扇)이라는 말처럼 무더운 날에는 부채선물이 제격입니다. 정부당국자는 서둘러 불합리한 전기누진요금체계 개선안을 내놓아 국민에게 모처럼 부채질 한 번 해주길 바랍니다. 폭염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역전 홈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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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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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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