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화가 이암(李巖, 1499~?)의 작품

복(伏)자는 사람 뒤에서 개가 엎드려 덮칠 준비를 한다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가 사람 앞에 바짝 엎드려 사람의 처분만 기다리는 뜻으로 읽혀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장맛비가 내리고 그치길 반복합니다. 궂은 날씨에 기온은 다소 내려갔지만 습기를 머금은 무더위가 괴롭긴 마찬가지입니다. 벌써 초복(初伏)이 시작되는 날이니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 않더라도 복날답습니다. 주위에선 삼계탕으로 이열치열(以熱治熱)한다고 난리입니다.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조차 무거울 정도로 만사가 귀찮은데 말입니다. 오늘은 복날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복날은 삼복을 총칭하는 말로, 음기가 양기에 밀려 숨는 날이라고 해서 숨을 복(伏)자를 사용합니다. 복날은 초복, 중복, 말복이 있으며 여름철 가장 무더운 30일에서 40일 사이의 기간입니다.

초복은 진짜 여름이 시작되는 열흘간을 말합니다. 보통 하지(夏至) 다음 간지로 세 번째 경일(庚日)에서 네 번째 경일 하루 전까지 10일간입니다. 올해는 7월17일부터 초복이 시작되는데 초복이 시작되는 날을 입복(入伏)으로 불러야 마땅합니다.

중복은 네 번째 경일에서 입추(立秋) 후 첫 번째 경일 전날까지로 때에 따라 10일간 혹은 20일간이 되기도 합니다. 말복은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에서 두 번째 경일 전날까지 10일간이며, 두 번째 경일은 복날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따로 출복(出伏)이라 부릅니다. 이처럼 복날이 특정 날짜가 아니라 일정한 기간임을 바로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말에 “복날 개 패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복날에 사람들의 몸보신을 위해 견공(犬公)들이 무자비하게 수난당하는 광경을 형용한 속담입니다. 복날에 개를 잡아먹는 풍속은 현재진행형이며, 많은 마니아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촌에서 우리나라는 개고기를 식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낙인 찍혀 세계인의 반감을 사고 있습니다.

사실이지 개고기식용은 우리나라만의 음식문화가 아닙니다. 중국 일부 지방에서는 개고기를 풍미가 뛰어난 고기 곧 “향육(香肉)”이라고 부르며 아직도 즐겨먹습니다. 춘추시대의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적국 오(吳)나라와 전쟁하기 전에 부녀가 아들을 낳으면 귀한 개고기를 하사하였고, 딸을 낳으면 값이 싼 돼지고기를 하사했습니다.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부근의 전국시대 진(秦)나라 묘에서 발견된 청동정(靑銅鼎) 안에는 개뼈 사골탕이 반 솥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예부터 중국도 개고기를 식용하였다는 문헌상과 고고학상의 증좌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송대에 휘종(徽宗)이 개띠라서 개고기가 연회석상에 오르는 것을 금지한데다 북방의 유목민족은 사냥개를 좋아하여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남방의 일부 지역과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길림성 일대를 제외하곤 개고기를 식용하는 풍습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더군다나 복날과 관련한 중국속담에 한국과 달리 개고기는 별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중국의 북방 속담에 따르면 초복에는 만두를 먹고, 중복에는 탕면을 먹고, 말복에는 계란밀전병을 먹는다고 합니다. 복날 입맛이 없을 때 중국인의 입맛을 돋우는 것으로는 만두만한 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새 밀을 갈아 만든 국수는 영양이 풍부할 뿐더러 뜨거운 탕면을 먹으면서 땀을 흘리면 몸속의 노폐물이 배출되어서 건강에 좋습니다. 모두 평상시 음식이지 특별한 보신음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음식보다 침구(針灸)나 부항(附缸)을 뜨는 것이 겨울에 보약을 먹는 것과 같은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참고할만한 복날 문화입니다.

필자가 타이완에 유학할 당시에 거리에 유기견이 눈에 많이 띄었고, 주말에 외박을 나온 젊은 군인들이 유기견을 잡아먹는 광경을 종종 보았습니다. 그랬던 타이완이 이제는 동물보호법을 제정하여 식용 목적의 개 도축을 엄금합니다. 심지어 가오슝(高雄)시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위반자에게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는데 효과가 커서 서서히 개고기식용국가라는 오명을 벗고 이미지개선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타이완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습니다. 개를 한편에선 반려견이라 해서 가족처럼 아끼는데 한편에선 복날에 보신용으로 때려잡는다면 뭔가 어색한 광경입니다. 나라와 민족마다 기호식품이 다르고 기호식품마다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이 따로 있다고 감안해도 오늘날 문명국가의 표준으로는 개고기식용은 지구촌사람들의 지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무조건 외국인의 비난을 배척할 수만은 없습니다.

삼복의 복(伏)자는 원래 사람 뒤에서 개가 엎드려 덮칠 준비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가 사람 앞에 바짝 엎드려 사람의 처분만 기다리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번 주는 복더위를 건강하게 나길 축복합니다. 굳이 음식보신의 전통을 지키겠다면 삼계탕으로 만족하시길 권고 드립니다.

GDP가 2만5천불을 상회하는 경제 강국에다 TV에선 채널마다 맛난 음식을 소개하느라 뜨겁고 거리에는 다양한 음식이 차고 넘칩니다. 이제는 우리도 인간과 너무너무 친근해진 개까지 여전히 먹는 불상사는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복날이라고 속담처럼 개를 패서 잡아먹지만 않아도 문명국가의 한 요소는 충분히 갖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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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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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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