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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13] 충무로별곡

적당히 회사 경영진과 타협한 노조 간부들이 앞서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실속만 챙긴 ‘가장 한국적인 노동조합’이 유행하던 우울한 시대… 박하 작가l승인2016.07.11l수정2016.07.1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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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트라이앵글

[골프타임즈=박하 작가] 함봉호는 중원여행사 김영무 전무와 함께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들이 탄 비행기는 ‘타이 항공’으로 요금이 국내 항공사보다 저렴했다. 물론 여행 경비는 여행사에서 부담했으므로 함봉호로서는 그다지 부담스런 여행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여행사가 후원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신문사에서 발행한 소설 『트라이앵글』이 베스트셀러로 부각되면서 태국의 치앙마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와 함께 여행사에 문의가 잇따르자 결국 중원여행사와 협찬 계약을 맺고, 사전답사 취재 여행 당사자로 함봉호가 결정된 것이었다.

함봉호의 이번 태국 치앙마이 취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출판국의 사업적 차원에서 마련된 이벤트였는데 주간지 취재부서에서 가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언론사 특성상 워낙 많은 말이 떠돌아다니는 데다 시기와 질투가 습관화된 탓도 컸다.

굳이 주간지 기자가 갈 필요가 없다는 발상이 부상된 것이다. 차라리 책을 펴낸 출판부 소속 직원이 가는 것이 옳다고도 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아예 영업부 사원이 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 쪽 주장은 영업 일선에서 고생한 사람에게 위로 차원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들 자기 입장만 견지한 데 따른 파열음이다.

하지만 끝내 주간지 취재부서로 낙찰된 것은 홍보 차원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치앙마이 현장을 본 그대로 잡지에 실어야 고객이 많이 참여하는 것은 뻔한 이치다. 기사를 쓰려면 사진도 찍을 줄 아는 기자가 가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

마침내 ‘피아’ 취재부서에서 가는 것으로 승인 나자 이번에는 어떤 기자가 가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최고참인 구본하가 버티고 있었으므로 함봉호로서는 별다른 욕심을 내지 않았다. 가뜩이나 영어 회화가 유창한 여민수와 김은주도 후보로 거론될 만했다. 하나 함봉호로 결론난 이유는 주간지를 3만부나 확장한 주인공이라는 점이 돋보인 것이다. 이른바 포상 차원에서 함봉호를 보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한 탓이다.

심지어 홍달표 부장도 속으로는 엄청나게 치앙마이 현장에 가고 싶어 했다. 다만 그것을 겉으로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괜히 나섰다가 부장 체면에 먹칠을 할까 두려워 선뜻 속내를 밝히지 않은 셈이다. 그것이 홍달표 부장의 평소 모습이었다. 또한 물욕이 많은 문정기 출판부 팀장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하기는 출판부 소속의 그들로서는 어느 정도 서운할 만도 했다. 자신들이 기획하여 만든 책자인데 덕을 본 축은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만큼 처량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그것도 왕년에 출판부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는 함봉호였으니 경쟁자들로서는 더욱 분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함봉호에게는 사내에 적들이 많았다. 그는 성격적으로 여민수처럼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그를 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든 원인은 입사할 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함봉호는 회사 입장에서 보면 무척이나 불편한 요주의 인물이었다. 요컨대 그는 자신과 우연히 연관된 회사의 치부를 움켜쥐고 있는 장본인이었다.

그런 연유로 그가 대외적인 행사 차원의 해외여행 당사자로 결정되는 일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중차대한 사안인 이상 국장급이나 기획실장, 전무나 사장 선까지 보고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국장이 도장을 찍으면 거의 통과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박철수의 입김이 작용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함봉호로 결정된 배후에는 의외의 인물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이번 테마 여행 기획안을 제출한 사업부 팀장인 배창호였다. 그가 구태여 함봉호를 옹호할 만한 개인적인 친분은 따로 없었다. 함봉호는 그 전에 개인적으로 우연히 몇 번의 술자리는 가져 보았지만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다.

다만 배창호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화통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또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의리의 소신파였다. 그런 비근한 예로 그는 고향이 전라도이면서도 경상도 정당을 지지했다.

그는 기안을 세울 때부터 일찌감치 함봉호를 지목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창호가 이를 미리 간파하고 국장에게 직언했다는 점이다. 그는 함봉호가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국장에게 간곡히 보고했다. 국장도 처음에는 슬그머니 만류하려다 배창호의 정당성에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아무리 비리가 난무하는 곳이라도 바른 말 잘하는 실력자들은 그 능력을 인정받게 마련이다. 어딘가 쿠린내가 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은근히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장은 시계 상납 사건 이후 함봉호를 좋은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항봉호가 생명보험사에 주간지를 다량 판매하기 이전인 잡지 창간 초기에 퀴즈 상품까지 가져오는 바람에 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편집부장이든 영업부장이든 누구 하나 제대로 경품을 엮어 오지 못하는 판국에 기사만 써도 무방한 함봉호에게 그런 발군의 섭외 실력까지 있으니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애독자에게 선물을 주는 퀴즈 잔치는 원래 영업부에서 광고를 따기 위해 마련한 지면이었지만 정작 제대로 가져오는 놈들이 없던 터라 가뭄에 단비였다.

그래서 결국 함봉호가 마지못해 칼을 빼든 셈이다. 함봉호는 주로 값비싼 뻐꾸기시계와 예물시계 등을 가져왔다. 다행히 대학 후배가 그쪽 분야의 잡지 계통에 있어 시계 회사를 소개해 준 덕이다.

그런데 한번은 맘이 잘 통하는 배창호가 함봉호더러 예물시계 한 세트를 국장에게 상납하라고 귀띔한 것이다. 결국 함봉호는 예물시계를 챙겨 국장에게 직접 선물했다. 함봉호의 진짜 속내를 알 수 없어 껄끄러웠던 국장은 그 후 마음을 열어 좋은 관계가 되었다.

아무튼 함봉호로서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일이었다. 꼴같잖은 소설책 때문에 자신이 예정에도 없던 해외여행까지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함봉호는 솔직히 자신이 가는 것조차도 떨떠름했다. 사실 남들처럼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 이유의 첫 번째는 우선 소설 『트라이앵글』의 내용이 황당했다. 소설이 애초부터 꾸민 이야기로 허구성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 책은 논픽션을 가미한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그런 소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자는 태국 북부 산간지대에 있는 소수민족을 과감하게 ‘태국 밀림 속의 고구려’라고 단정지었다. 어쨌든 그런 발상은 기막힌 것이었다. 어차피 소설가들이 꿈꾸는 최고의 비책은 독자들을 얼마나 그럴 듯하게 우롱하느냐는 데 있으므로. 따라서 그 정도의 허구적인 소재는 얼마든지 용납되는 거였다.

소설은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후 당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20만명이 넘는다는 역사적인 추론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다시 중국 남쪽으로 끌려가 버림받았고, 결국 중국의 핍박에 견디지 못해 히말라야 산맥 남쪽 자락의 오지로 흩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1300년 후, 태국 북부 황금의 삼각지대 치앙마이가 이 작품의 무대이다. 작가는 한반도로부터 수만 리 떨어진 공간과 13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 그리고 고구려의 부활을 꿈꾸는 전쟁으로 독자들을 그럴 듯하게 현혹한다.

홍달표 부장은 이 책을 내면서 제목에 ‘소설’ 자를 넣는 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다. 소설에 무지한 홍달표로서는 그것을 결정하는 일이 고역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책표지에 ‘소설’이란 단어를 넣자니 픽션이란 점이 거슬리고, 안 넣자니 거짓말인 듯한 논픽션이 문제가 될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책 출간은 예정보다 자연스럽게 늦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홍달표는 대개의 경우 느려 터진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굼벵이다. 그런 나머지 어떤 사람들은 그의 고향이 충청도가 아니냐고 묻기까지 한다. 물론 충청도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는 서울 토박이다. 그는 그것을 애써 자랑하듯 티를 잘 낸다. 이 모든 문제는 그의 조심스런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별명을 붙인 사람이 바로 함봉호라는 데 있다.

그런 홍달표도 빠를 때는 엄청난 속도를 낸다. 그는 회사가 주최하는 행사장에서 어쩌다 사장이라도 마주칠 경우가 있으면 그 누구보다도 빨리 달려가 머리를 조아린다. 그에게는 사장 자체가 신적인 존재였기에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 80년대 말 전임 사장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젊은 사장에게도 역시 똑같은 방법을 써먹는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데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예전과 변함없다.

그래서 그에게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다. 이른바 ‘다마네기’가 그것이다. 굳이 ‘양파’란 우리말을 두고 일본말로 쓴 이유는 나름대로 그 안에 고차원의 함수가 담겨 있다. 홍달표는 한마디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까도 까도 항상 똑같다는 뜻에서 ‘양파’를 쓴 것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다마네기’란 이름을 붙인 것은 그가 예전에 한때 일본어를 배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비아냥거리는 뜻에서 일본어로 쓴 것이다.

회사를 일취월장시킨 예전의 전임 사장은 사원들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켰다. 다만 강제성을 띠지 않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직원들만 가르쳤다. 편집국 기자는 물론 비편집국 직원들도 상당수가 일본어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개중에는 진정으로 배우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단지 사장의 눈동자를 찍기 위해 참석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이 당시 신입사원이던 함봉호는 홍달표의 권유에 의해 ‘히라가나’와 ‘카타가나’도 모르면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배후에는 고도의 숨은 흑막이 존재한다. 홍달표가 사장에게 잘 보이려고 일부러 함봉호를 일본어 강의에 투입시켰던 것이다.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처지에서 일본어를 학습한 것은 한마디로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 극이었다. 그것도 그런 대로 쉬운 편인 기초 회화 코스가 아닌 전문가 수준이었다. 교재는 일본신문 사설을 스크랩해 복사한 것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상당히 어려운 전문용어와 해독하기 힘든 한자어가 나오는 고급 코스였다.

문제는 홍달표가 그 신문 사설을 복사해서 사장 비서실까지 배달하는 일을 함봉호에게 시켰다는 사실이다. 신입사원인 홍달표로서는 이런 일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무작정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홍달표만의 출세 비책이 숨겨져 있었다.

무엇이든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이다. 기초적인 수학 공식을 모르고는 감히 고차원의 미적분을 풀 수 없고, 아무리 화려한 건물도 주춧돌을 잘못 놓으면 얼마 가지 못해 무너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일본어도 기초를 모르고서는 더 이상 진전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 처지의 사람은 함봉호뿐 아니라 홍달표를 비롯한 타부서 간부 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사원이 마지못해 아침 일찍 나와 일본어 교육을 받는 것이었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 식이었다. 그때는 대개 인맥을 통해 입사한 사람들이 많아 그런 식으로 사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실력이 있는 사원들은 사장의 의도대로 잘 따라갔다. 신입사원인 탓에 사장으로부터 지적받지 않았던 함봉호와 구본하는 그냥 참석하는 데 의의를 두었다. 그런 반면 나서길 좋아하는 홍달표는 사장의 눈도장을 완벽히 받기 위해 그야말로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근무 시간에도 일은 하지 않고 사전을 찾아가며 일본어 공부를 했다. 미리 복사된 교재에다 빨간 볼펜으로 깨알같이 써 커닝 페이퍼를 만들기는 쉬웠다. 홍달표는 사장이 시키기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읽으면 그뿐이었다. 그러면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홍달표가 열심히 하는 데 흡족해 했다. 그 결과 홍달표는 실제로 다른 사람들보다 진급이 월등히 빨랐다. 한마디로 그는 그런 방면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인물이었다.

본의 아니게 일본어 강사 노릇을 자처한 사장은 젊은 시절 일본에서 자란 경험이 있어 일본어 실력이 걸출했다. 어쨌든 전직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려는 사장의 의도는 좋은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만한 아이디어조차도 내기 힘들었다.

그런 훌륭한 사장도 80년대말 어용 노조가 생기면서 비롯된 쿠데타로 중도에 하차하고 말았다. 정치적으로 어수선하던 그 무렵은 전국적으로 노조가 태동되어 강성을 띠던 때였다. 적당히 회사 경영진과 타협한 노조 간부들이 앞서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실속만 챙긴 ‘가장 한국적인 노동조합’이 유행하던 우울한 시대였다.

타이항공 기내에서 처음 본 태국 스튜어디스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출중한 미인이다. 함봉호는 한동안 넋을 잃고 그녀들을 관찰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스튜어디스에게 눈길이 자주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태국 스튜어디스들, 예쁘죠?”

공항에서 인사를 하고 한동안 어색하게 말이 없던 김영무 전무가 말을 건다.

“네, 그렇군요.”

함봉호가 애써 웃으며 머쓱해 한다.

자신이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줄곧 여자 승무원들을 쳐다보는 것을 김 전무가 지켜본 데 대한 부끄러움 탓이다. 사실 함봉호로서는 이번이 첫 번째 해외여행이어서 모든 것이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는 신혼여행조차 해외가 아닌 제주도로 겨우 다녀왔었다.

“지금 우리가 가려는 태국 치앙마이에는 미인들이 많기로 소문났지요. 미스월드 대회에서 입상한 여자들이 상당수 나왔을 만큼 유명하지요.”

김 전무는 여행 전문가답게 박식한 여행 상식을 털어놓는다.

“아, 그래요? 대개 태국 사람들은 키가 작은 듯한데, 어떻게 세계적인 미인대회에서 그렇게 수상하지요?”

“하핫, 태국 사람들이 다 키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와 똑같아요.”

“…….”

“그건 그렇고, 정말 책에 나온 것처럼 그들이 고구려의 후예가 맞을까요?”

김 전무가 갑자기 말문을 비튼다.

함봉호로서는 대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김 전무는 그것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솔직히 그것은 함봉호가 가장 말하기 힘든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그 역시 그에 대해 확실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함봉호는 책을 만든 후배로부터 들은 바가 있어 어느 정도 알기는 했다. 우선 그 책의 원고가 다른 신문사로부터 퇴짜를 맞은 점이 껄끄러웠다. 내용도 검증받은 적이 없는 황당한 것인 데다 글쓴이마저 초보자였기에 그런 책을 함부로 펴낸다는 자체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소규모의 출판사라면 몰라도 이른바 여론을 책임져야 할 언론사에서 그 따위 책을 내는 발상부터 위험한 모험이다.

“글쎄요. 저로서도 어떻다고 확실하게 말씀 드릴 수가 없네요. 아무튼 호기심을 자아내는 여행지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일주일간 저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할 텐데, 혹시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는지요?”

“생사고락이요?”

“아니, 그렇게 놀랄 것까지는 없구요. 다만 우리가 찾아가는 곳이 황금의 삼각지대인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위험하다니요?”

“아, 그 책을 미처 다 읽지 못하셨나 보죠?”

“네, 조금….”

함봉호가 머리를 긁적인다.

“후훗, 그렇게까지 겁먹을 필요는 없구요. 골든트라이앵글은 미얀마, 라오스, 태국이 서로 국경을 나누고 있는 지역이라서 조금은 긴장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아, 네. 하지만 그렇게까지….”

“물론 예전보다는 훨씬 약해졌지만 아직도 간간이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럼 더 재미있겠네요.”

함봉호는 마음 약해진 자신을 짐짓 달랜다.

그 원고가 흘러들어온 배경도 확실하지 않았다. 출판과는 하등 관계없는 판매 담당 이사가 그 원고를 국장에게 보여준 것이다. 누가 그 원고를 이사에게 전해 주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글쓴이가 직접 전달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아무튼 하부보다는 상부에서 거꾸로 내려오는 것이 더 위력적인 언론사의 특성을 잘 아는 사람이 분명했다.

결국 그 책은 실무진이 이렇다 할 만한 확인도 하지 않고 덜컥 펴내고 만 것이다. 게다가 때마침 다른 신문에서 치앙마이 특집을 대문짝만하게 게재한 것도 은연중 큰 힘이 되었다. 신문이나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밥 먹고 하는 일은 오로지 새로운 사실을 캐내는 것이어서, 그런 특종은 신바람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언론사는 ‘최초의 특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저자가 가지고 온 자료 사진과 원고를 그대로 게재한 그 신문은 한동안 많은 독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신문사는 저자의 출판 의도를 거절했다. 단지 거기까지는 괜찮았지만 출판까지는 엄두가 안 났던 모양이다. 그만큼 나름대로 현명하게 대처한 셈이다.

“참, 국영방송 TV 기자도 며칠 전에 치앙마이 현지로 떠났다면서요?”

“네, 잘하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건 어떻게?”

“아, 그 담당 피디 와이프가 우리 잡지 객원기자이거든요.”

“에이, 그래도 그 넓은 태국 땅에서 우연히 만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서로 약속을 하기 전까지는….”

“하하, 그럴까요?”

함봉호는 애써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사실 그랬다. 이번 해외 취재는 함봉호뿐이 아니었다. ‘바보상자’라 일컫는 공중파 방송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사건 취재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작자들이니까. 텔레비전 방송으로서는 이것이야말로 기가 막힌 취재 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연하게도 함봉호가 근무 중인 주간지의 객원기자 남편이 태국 현지 취재를 떠난 것이다. 그래서 그 객원기자는 혹시라도 치앙마이에서 자신의 남편을 만나면 아는 체하라고 귀띔했다. 물론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계속>

박하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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