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골프타임즈=박서현 시인] ‘고집이 그리 세 가지고. 이 봐 힘으로 치지 말라고 툭 채를 떨어트리라고’ ‘스탠스가 틀렸어 오른쪽으로 돌아. 어 성질머리 하고는 그 봐 어디로 날아가나‘

강 사장은 부인 사랑이 어지간하다. 함께 온 남 사장의 예쁜 동반자가 눈에 걸려 건건이 부인의 샷을 타박한다. 남 사장은 젊은 미모의 여성과 알콩달콩 거린다. 강 사장의 부인은 남 사장의 이력을 알고 있다.

오늘 함께 온 k는 대학 학비를 대주며 후원하더니 골프까지 가르쳐 주는 모양이다.

강 사장 부인은 오늘 스폰서로 부부동반을 나왔지만 마음이 편할 리 만무다. 거기다가 건건이 참견하는 잔소리에 굳어버린 샷이 좋게 나올 리도 없다.

젊은 k의 샷이 하늘을 난다. 나이스 샷!

강 사장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탄력 있는 몸매를 잘 살려준 골프복을 입은 모습이 파란 그린 위의 꽃이 핀 양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하다. 또 강 사장은 부인이 티샷을 하기도 전에 잔소리다.

‘헤드업하지 말고 공만 봐!’ 순간 공은 슬라이스를 내며 풀 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아랫배 당겨, 고개는 왜 들어’

강 사장 부인은 골프채를 내 던지고 카트를 끌고 가버린다. 캐디가 쫒아가지만 빈 카트만 끌고 올뿐이다. 필드에서 남녀가 골프를 치는 것을 보면 캐디들은 부부인지 친구인지 불륜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집안에서의 못된 습성이 안 나올 리 없다. 스폰서가 애첩과 함께 골프를 치려면 부부 동반을 요구하거나 갑질을 하면서 을을 대동하기 마련이다.

고사장의 갑질은 유명하다. 잘 난 척 일장연설을 하고 고사장은 티잉 그라운드에 섰다. 뒤에서 지켜보던 동반자인 을들이 ‘오비나 나 버려라’하고 소곤 거렸다,

굿삿! 캐디의 우렁찬 외침에 아랑곳없이 똑바로 나가던 볼은 획 방향을 바꾸어 숲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두 동반자는 고소해했다.

골프는 하늘이 도와야 하는 운동이다. 무엇이든 인생살이가 하늘이 도와야 하지만. 골프처럼 하늘의 도움을 눈으로 느끼면서 하는 운동은 드물다.

가끔 샷을 하면서 무언가의 힘이 당겨주는 듯 샷이 나가는 기운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샷을 내동댕이치듯 빼앗는 느낌도 받는다. 퍼팅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휘어져 돌다가 빨아 당기 듯 홀컵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오기를 거부하듯 홀컵 앞에서 멈추어 서기도 한다.

볼은 항상 마음보다 먼저 마음을 안다. 남편의 볼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서 동반자의 빈축이라도 받을 양이면 부인의 볼도 그곳 옆으로 따라가서 안착을 한다. 부창부수로 웃어버린다.

골프장에서의 인사사고는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꼭 캐디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룰을 지켜야 한다. 챙이 있는 모자를 쓰는 것은 필수일 뿐더러 앞서 나가지 말아야 한다.

볼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광대뼈가 으스러지는 경우도 잔등이나 갈비의 골절도 있고 실명된 골퍼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돈다. 귀를 맞아 맞뚫린 듯한 고통으로 십 년 넘게 치료도 받는다.

구력이 쌓일수록 안전사고에 둔해지고 제 실력을 믿을수록 오비나 슬라이스로 인명사고가 빈번한데도 뉴스속보도 없는 안전 불감증의 사각지대 인 것이다.

얼마 전 캐디가 그린 위에 깃발을 꽂고 그린을 벗어나는데 L씨는 아쉬운 퍼팅이 생각나 되돌아서 투 퍼팅을 한 지점에 볼을 놓고 다시 쳐보려는 순간 그린을 맞고 튀어 오른 볼에 뒷목을 맞았다. 목은 금방 주먹만큼 튀어 오르고 부어올랐다. 그건 다행이다. 그린에 한번 맞아 탄력을 잃은 상태니까. 부어오른 것만 가라앉으면 된다.

직원들과 친목대회를 나간 사장이 직원이 친 볼에 맞아 1년 가까이 되도록 못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친 샷에 실명이 되어 의안으로 살아가는 부인도 있다. 세상의 많은 일이 뉴스 보도 없이 벌어지는 곳이 골프세상인 것이다. 앞서나가지만 않으면 불상사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 쾌적하고 아름다운 필드에서 라운딩하고 돌아와 함께 노을을 바라본다. 모든 골퍼들이 떠난 페어웨이에 고즈넉하게 어둠이 내린다. 손자들이 안부를 묻는 카톡을 보며 흐뭇해하는 남편을 바라본다. 그 얼굴에는 여전히 가슴 설레게 하던 젊었을 적 그 얼굴이 있다. 하늘의 별도 따 주마 약속하던 미더운 얼굴이 여전 남아있었다.

‘여보! 오늘 당신의 샷은 정말 멋있었어요.’

넓고 먼 필드를 돌아온 한 줄 바람이 머리 결을 날리는 황혼녘이다.

박서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박서현 시인은...
문학시대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와 시와수상문학 회원이다. 시집으로는 ‘바람은 혼자 울지 않는다’ ‘해바라기’ 등이 있다.
골프타임즈를 통해 매주 화요일 ‘박서현의 요지경 골프’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