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회에서 타온 수많은 트로피... 나에게는 행복, 아내에게는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요물단지일 뿐이다.

서재에 쌓여만 가는 트로피를 보며 골프 연륜이 느껴지고 보람과 풍요로움을 만끽하곤 했다

[골프타임즈=이종민 칼럼리스트] 그간 내가 출전한 경기를 헤아려보면 수 없이 많다. 그때마다 타온 트로피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부지기수다. 소재도 다양하다. 순은으로 된 것이 있는가 하면 구리, 청동, 크리스털 종류도 여러 가지다. 웬만한 점포의 트로피 코너를 방불케 했다. 세월을 둘러쓰고 누렇게 색이 바랜 트로피, 가끔 손질한 덕에 빛을 반짝반짝 내고 있는 트로피, 그래도 그 트로피를 보고 있다 보면 왠지 마음이 뿌듯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전혀 알 수 없는 색으로 변한 트로피는 바라볼 때면 더욱 세월이 느껴지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직장 때문에 또 나중에는 사업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워낙 골프를 좋아하다 보니 시간만 나면 공치러 가느라 사실 집에서 트로피를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하나하나 트로피가 쌓여갈 때마다 내 골프의 연륜이 느껴지고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풍요로움을 만끽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트로피가 쌓이고 쌓여 서재에서 일부분은 창고까지 옮겨놔야 할 정도가 됐다. 가끔 추억을 다듬듯 서재에 가서 트로피를 보며 지나간 세월을 유추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미국 출장을 다녀왔을 때다. 내 서재 공간이 어쩐지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 영 이상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 왈, 트로피가 너무 많고 짐이 되는 것 같아 녹여서 은수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데 그저 보는 것보다 실용적으로 식생활에 쓰는 게 더 효용적 가치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 아내의 변론이다. 물론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내가 원망스러울 만큼 섭섭했다. 허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고 내 스스로가 다독일 수밖에… 하긴 섭섭함으로 치면 아내가 더 할 말이 많다는 것도 잘 안다.

아내는 그간 오랜 시간 휴일이라는 휴일은 몽땅 골프에게 뺏겨 함께 지낸 적이 별로 없었으니 나로서도 뭐라 할 말은 없다. 휴일이면 난 골프백을 메고 골프장으로 향했고 그때마다 아내는 섭섭한 눈으로 나를 배웅했다. 워낙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여타 말 한 마디 내비치지 않았다. 속으로 누그러뜨리고 체념하기까지 아내의 시간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안다. 사실 그러다 보니 부부동반해서 가야하는 집안 대소사에도 늘 아내 혼자 다녔다. 그런 아내에게 트로피가 예쁠리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내는 트로피를 볼 때마다 혼자 보냈던 시간과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을 떠 올렸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그래도 경기에 나갈 적마다 나의 긴장된 땀과 내 정성을 온통 쏟아 부어 가져온 나의 보람인데…

오늘도 아내는 그것으로 밥을 먹으라고 식탁 위에 올려 준다. 어느새 골프는 나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나의 땀이, 내 젊음이 녹아있는 트로피, 트러블을 일으켜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돌이킬 수 없는 나의 트로피, 밥 수저.

이종민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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