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러간 낭군 붙잡을 수 없듯이 가는 봄 잡지 못해 꽃에게 애원하나 끝내 떨어져 흩날려가는 봄날 풍경이 한 폭의 풍경화 같네...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봄날이 따뜻하다 못해 벌써 덥기까지 합니다. 흐드러지게 개화했던 벚꽃도 봄바람에 꽃비가 되어 흩날리다가 가랑비에 맥없이 떨어집니다. 아직 진달래와 철쭉의 붉은 향연이 남아 있지만 거리와 산야는 차츰 꽃 대신에 연녹색 잎으로 새롭게 착색됩니다. 벌써 자취를 감춘 목련도 애잔하거니와 떨어진 벚꽃을 밟고 지나가기 안쓰러워 오늘은 꽃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꽃이란 말에서 필자는 다소 슬프고 씁쓸한 기억이 먼저 떠오릅니다. 필자의 선배님 중에 다소 젊은 날에 상처한 분이 계십니다. 두 분의 부부애가 각별나서 주위의 부러움을 많이 샀으나 부인이 폐암 판정을 받고 얼마 투병생활도 못하고 별세하셨습니다.

남편의 유학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을 다해 놓고 대학교수가 되어 생활이 안정되자 곁을 떠났으니 선배님의 상심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장례기간 동안 많은 친지가 위로를 건넸으나 선배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빈소를 지켰습니다. 장지에 가서 하관을 하고 상주로서 흰 국화 한 송이를 관 위로 던지면서 마침내 입을 떼어 “잘 가라…”며 울먹였습니다. 여태까지 필자가 들었던 가장 구슬픈 이별사(離別辭)였습니다. 그날 필자는 귀가하여 아내에게 절대 나보다 먼저 죽지 말라고 떼를 썼습니다.

대만유학시절 필자가 연애할 때의 해프닝입니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하루는 애인이 은근히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기숙사의 다른 여학생들은 남자친구에게서 꽃을 자주 선물 받는데 왜 필자는 낭만을 모르냐는 항의였습니다. 문학전공자에게 낭만을 모른다고 핀잔을 주다니 당시 젊은 혈기에 호승심이 강했던 필자는 낭만의 극치를 보여주겠다며 그길로 꽃가게를 찾았습니다.

필자는 호기롭게 화원에 있는 꽃을 종류별로 모조리 몇 송이씩 넣어 꽃바구니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여자들이 좋아할 꽃바구니를 만들었다며 자화자찬하는 꽃가게주인에게 필자는 왜 저 흰색 꽃은 빠트렸냐고 역정을 내었습니다.

주인이 놀라며 “저건 국화인데 저 꽃도요?”라며 되물었습니다. 그때까지 국화의 용도를 몰랐던 필자가 흰 국화도 넣으라고 고집했습니다. 주인이 묘하게 웃으면서 다시 꽃바구니를 만들어 주었고, 필자는 의기양양하게 애인 앞으로 꽃바구니를 배달시켰습니다. 여학생기숙사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필자는 애인에게 흰 국화를 바친 무식한 작자로 애인 친구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꽃바구니를 받은 애인이 지금은 필자의 아내가 되어 이후로 필자에게 꽃 선물은 말도 꺼내지 않습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춘효(春曉)」라는 시에 “밤새 비바람소리 들리더니 꽃이 얼마나 떨어졌을꼬?(夜來風雨聲音, 花落知多少?)”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문인들은 봄날에 자고 일어나면 전날까지 곱게 피었던 꽃이 졌을까봐 노심초사하였던 모양입니다.

봄날 문인의 근심사를 잘 읊은 작품으로는 송나라 문인 구양수(歐陽脩)의 「접연화(蝶戀花, 나비가 꽃을 연모하다)」라는 사(詞)를 꼽을 수 있습니다. “거센 비바람 몰아치는 삼월 저녁, 날이 저물어 문을 닫았으나, 봄을 붙잡을 수 없도다. 눈물어린 눈으로 꽃에게 물어도 꽃은 말이 없고, 어지러이 흩날리어 그네 너머로 날아가네(雨橫風狂三月暮, 門掩黃昏, 無計留春住. 淚眼問花花不語, 亂紅飛過鞦韆去).”

기루(妓樓)에 술 마시러간 낭군을 붙잡을 수 없듯이 가는 봄을 잡지 못해 꽃에게 애원하나 끝내 떨어져 흩날려가는 봄날 풍경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합니다. 하릴없이 떨어지는 꽃을 보는 사람의 심정을 송나라 여류사인(詞人) 이청조(李淸照)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녹색 잎이 살찌고 붉은 꽃이 야위는(綠肥紅瘦)” 봄날의 애상(哀傷)은 술로도 달랠 수 없어 “사람이 국화보다 야위어진다네(人比黃花瘦).”

지난주 선거로 어제까지 권세를 누리던 정치인이 많이 낙선했습니다.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 봄날 꽃잎 신세가 된 것입니다. 꽃이 지면 아쉬워 슬퍼하고 심지어 꽃보다 야위어가는 사람도 있건만 정치인이 선거로 낙마하면 사람들이 애석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통쾌해합니다.

평소 민심이 비바람보다 더 매서운 줄 모르고 위세를 부리다가 자초한 당연한 귀결입니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선거 전 약속을 벌써 유야무야(有耶無耶)하려는 정치인을 다음 번 선거에는 그네 너머 저 멀리 하늘 밖으로 날려 보내야겠습니다.

필자도 변덕스런 봄 날씨에 지는 꽃이 안타까워 꽃보다 야위어 집니다. 이번 주에는 꽃구경 봄나들이를 만끽하시길 축복합니다. 아울러 꽃집에도 들러 예쁜 꽃을 골라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한 송이라도 선물해보길 권면합니다. 봄꽃도 예쁘지만 꽃을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 예뻐서 꽃을 받는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역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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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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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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