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 9단 대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제1국 장면(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바둑=기예(棋藝), 인간의 예술로 예측할 수 없는 승부를 겨루는 참된 묘미 더해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자연의 운행은 역시 어김이 없습니다. 아직도 조석으로 꽤 쌀쌀하지만 길가의 풀이 제법 파릇파릇해졌고 봄꽃도 저마다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합니다. 이래서 따뜻한 봄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새 생명의 환희를 노래합니다. 오늘은 봄날의 희망을 구가하는 대신에 얼마 전 인간이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충격을 달래볼 작정입니다. 오늘은 바둑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바둑은 가로세로 19줄이 난 반상에서 두 사람이 각각 흰 돌과 검은 돌을 번갈아 놓으면서 누가 집을 많이 짓는지 경쟁하는 놀이입니다.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의하면, 중국 고대에 요(堯)임금의 아들 단주(丹朱)의 행실이 완악하여 바둑을 만들어 단주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본질적으로 두뇌게임인 바둑이 고대의 중국인들은 성정의 도야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서인지 바둑은 ‘금기서화(琴棋書畫)’라 해서 거문고, 서예, 그림과 더불어 문인4예(文人四藝) 중의 하나로 선비의 필수 교양으로 여겼습니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 조치훈(趙治勳) 9단이 일본에서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두면서 당시 세계최강의 일본바둑계를 초토화시킬 때 매료되어 바둑을 배웠습니다. 기력이라 해보았자 동네바둑이라 어디 가서 명함도 내놓지 못합니다. 하지만 대만유학시절에 조훈현(曺薰鉉) 9단이 중국의 네웨이핑(聶衛平)과 제1회 응씨배(應氏杯)에서 천하제일고수 자리를 놓고 겨룰 때 직접 대만기원을 찾아가 대국해설을 들으면서 혼자서 조훈현 9단을 열렬히 응원하여 대만기우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30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방의 기차역전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늦어져서 무료함을 달래려 근처의 기원에 들렀습니다. 소파에서 졸던 노인 한 분이 반갑게 다가오더니 기력을 묻기에 무심코 동네3급이라고 했습니다. 노인이 나랑 비슷하다면서 심심풀이로 한 판 두자고 했습니다. 흔쾌히 그러자며 바둑판 앞에 앉았더니 그냥 두면 재미가 없으니 점심으로 짜장면내기 어떠냐고 제의했습니다.

내기가 썩 내키지 않았지만 노인네에게 점심 대접하는 셈 치고 승낙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두어보니 기력이 필자보다 몇 수 위였습니다. 무참히 농락당한 끝에 바둑돌을 거두자 노인이 기원주인을 불러 “기원 전체에 짜장면 시켜!”라고 외쳤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기바둑으로 일생을 보낸 그야말로 센 기원3급이었고, 동네3급 필자는 노인에게 심심풀이 점심내기 희생양에 불과하였습니다. 이후로 필자는 기원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알파고의 ‘고’는 바둑 ‘기(碁)’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근현대바둑을 일본이 주도해서 붙여진 이름인가 봅니다. 세계 최고수 가운데 일원인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결한다고 들었을 때 필자는 미스매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인공지능에는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이 있는데 알파고는 약한 인공지능의 일종으로 연산능력이 극대화된 부분적 인공지능이라고 합니다. 연산능력에다 인간의 감정과 생각이 가미된 강한 인공지능에는 아직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알파고가 인간 최고수에게 도전한 것은 개발자가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승리를 확신해서였습니다.

이세돌 9단이 도전에 응한 것은 바둑수를 헤아리는 자신의 연산능력에다 인간의 창의성을 더하면 충분히 이길 거라고 확신해서 일 것입니다. 결과는 알파고의 연산능력에 인간의 완패로 끝났고 그나마 한 판 건진 것이 겨우 인간의 자존심을 달래줘 다행입니다. 인공지능의 능력이 놀랍고 무섭습니다. 이로 인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해서 종국에는 인간을 지배할까 염려하는 사람이 여기저기 많아졌습니다.

사실 필자는 그다지 염려하지 않습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그냥 인간과 기계간의 연산능력을 겨룬 일과성 이벤트에 불과합니다. 연산능력의 폭과 속도에서 이미 사람이 컴퓨터를 당해내지 못한 것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감정의 기복이 있는 인간이 감정이 없는 기계의 완벽한 연산능력을 이겨낼 도리가 없습니다. 이세돌 9단의 패배는 당연합니다.

바둑은 사람끼리 1대1로 대면하여 승부를 가르는 게임입니다. 대부분 기력으로 승부를 가르지만, 승부의 세계에는 ‘기칠운삼(技七運三)’의 법칙이 어느 정도 적용됩니다. 3할에 해당하는 운수에는 대국자의 컨디션, 상대방의 실수, 승부사의 기세 등 실력 외적 요소가 작용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승부는 때때로 약자가 강자를 꺾는 반전의 매력이 존재합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반드시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1=2는 정해진 이치이나 승부가 모두 정해진 이치로 결정 나면 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바둑은 게임이지만 ‘기예(棋藝)’라는 말에서 보듯이 인간의 예술이므로 사람끼리 예측할 수 없는 승부를 겨루는 데에 묘미가 있습니다. 알파고에 인간의 연산능력이 졌다고 그렇게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파고는 바둑을 두는 묘미를 모릅니다. 오로지 계산하여 이기는 법 밖에 모르니까요.

이번 주는 친한 사람과 가벼운 내기를 해서 꼭 이기라고 축복합니다. 설령 진다고한들 친지에게 밥 한 끼 사는 것도 또한 사람 사는 재미라고 봅니다. 아울러 여유가 되신다면 바둑도 배워보시길 바랍니다. 바둑을 달리 수담(手談)이라 부르는데, 손으로 나누는 대화도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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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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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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