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젠하워는 백악관 지하 체육관에 그물을 쳐 작은 연습장을 만들었는가 하면 백악관 남쪽 뜰에서 롱 아이언을 연습했고, 퍼팅 그린까지 만들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켜 쉽게 해결하고 잔머리 굴리지 않으며 솔직 담백하게 문제 접근

[골프타임즈=안문석 작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윌슨만큼 골프를 사랑한 대통령이다. 재임 8년 동안 800번 정도 쳤다. 3~4일에 한 번은 골프를 친 것이다.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꼭 골프를 했다. 아이젠하워는 원래 군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전쟁 영웅 가운데 하나다. 1944년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켜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육군참모총장과 나토군 사령관을 지내고 1952년 퇴임했다. 그를 이렇게 성공한 군인으로 만든 것은 부하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였다. 성공적인 작전의 공은 모두 부하들에게 돌렸다. 그래서 부하들의 충성심이 높았다. 그 바람에 그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퇴임 후 아이젠하워는 조용히 여생을 즐기려 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를 정치권이 그냥 두지 않았다. 공화당에서 그를 대통령 후보로 영입했고 1952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한국전쟁을 마무리하고, 소련의 핵 공격을 받을 경우 전략폭격기로 대량 보복을 가한다는 전략을 채택하고, 소련의 팽창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롤백(roll back) 정책을 실시하는 등 주요 정책을 시행했다. 공산국가의 침략을 받은 국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아이젠하워 독트린’도 채택했다.

소련과의 냉전이 심한 시기여서 대외 정책에서 주요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의 일에 정열을 쏟는 형은 아니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켜 쉽게 해결하는 형이었다. 잔머리를 많이 굴리지 않고 솔직 담백하게 문제에 접근하는 그의 성격이 이러한 단순한 일처리가 가능하도록 해줬다. 대통령 일에 모든 것을 바쳐 밤낮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골프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윌슨 행정부 1기 4년 동안은 경제도 호황이었다. 그래서 1주일이면 두 번씩 라운딩을 했다.

아이젠하워는 골프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백악관 집무실에도 골프화의 스파이크 자국이 수두룩했다. 후임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집무실을 인계 받아 들어갔는데, 나무 바닥에 수천 개의 스파이크 자국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골프를 좋아하기로는 아이젠하워 못지않은 케네디도 백악관 집무실의 그런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스파이크 자국은 케네디와 린든 존슨의 임기를 거쳐서 1969년 리처드 닉슨이 집무실에 들어설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7대 국회의원이었던 김영삼, 장경순, 신용남 등 12명의 국회대표단이 1969년에 미국이 인류 최초의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를 발사하는 장면을 참관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 백악관도 예방해 닉슨과 환담했다. 아마 골프의 강자였던 신용남은 자신의 특기가 골프였던 만큼, 그때까지 남아 있던 스파이크 자국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집무실에서 뒷마당으로 가는 문 앞까지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카펫이 끝나는 부분에 나무 바닥이 좀 드러나 있었고, 거기에 스파이크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신용남이 닉슨에게 물어봤다.

“이것들이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닉슨이 곧바로 대답했다.

“아이젠하워의 ‘소행’입니다. 이것을 뜯어서 아이젠하워의 친구들, 공화당의 후원자 등에게 기념품으로 나누어줄 생각입니다.”

이후 닉슨은 실제로 나무 바닥을 뜯어서 아이젠하워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아이젠하워는 백악관 지하 체육관에 그물을 쳐 작은 연습장을 만들었는가 하면 백악관 남쪽 뜰에서 롱 아이언을 연습했고, 퍼팅 그린까지 만들었다. 매일 업무가 끝날 때쯤에는 집무실에서 골프화를 갈아 신고 현관을 지나 남쪽 뜰로 나가곤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8번 아이언, 그리고 웨지와 퍼터를 챙겨들고 나갔다. 백악관에서 골프 연습을 한 건 아이젠하워가 처음이 아니다. 27대 대통령 태프트가 처음으로 시작했다. 그도 백악관 잔디밭에서 어프로치샷을 연습하곤 했다. 그의 임기가 1909년에서 1913년이니 100년 전부터 백악관이 골프 연습장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다. 케네디, 포드도 백악관 잔디밭을 연습장으로 이용했다.

아이젠하워 골프, 맑고 흐림에 따라 백악관 기후도 변덕
그가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것은 25세이던 1925년이다. 미국에 골프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던 때다. 캔자스주의 포트 레번워스(Fort Leavenworth)에 있는 육군지휘참모대학에 1년간 다닐 때 골프를 배웠다. 이후 워싱턴, 필리핀 등지로 임지를 옮겨 다니면서 줄곧 골프를 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최고사령관을 할 때도 틈틈이 런던 남쪽에 있는 골프장을 다녔다. 당시 부하들은 독일이 골프장을 폭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육군참모총장, 컬럼비아대학 총장, 나토군 사령관을 할 때나 대통령이 되어서도 골프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골프를 자주 하다 보니 비판이 없을 수가 없었다. 상원의원 한 사람은 “골프 타수보다는 실업률에 더 관심을 보이라”고 촉구하기도 했고, 민주당과 노조 단체들은 그의 라운딩 횟수를 세기도 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젠하워의 맷집은 누구도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렇게 얻어맞아도 꿋꿋하게 골프를 했고, 그러고도 1956년 대선에서 또 이겼다. 그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명성과 경제적 호황이 그를 뒷받침해주고 있었고, 또 그렇게 골프를 하면서도 중요한 일은 제대로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 골프를 해도 크게 문제가 없음을 보여줬고, 또 언론이나 야당, 노조가 아이젠하워의 골프에 대해 워낙 오랫동안 비판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 케네디나 클린턴, 버락 오바마의 골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들 후임 대통령들은 아이젠하워에게 많이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아이젠하워에게 골프는 워낙 중요해 일까지 영향이 미칠 정도였다. 골프가 잘 안 되면 다음 날 짜증내고 화를 냈다. 백악관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반대로 평소 잘 나던 슬라이스를 안 내거나 퍼팅이 잘 되면 다음 날 백악관이 밝았다. 회의도 화기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백악관 직원들은 대통령의 골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늘 잘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골프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백악관 직원들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젠하워의 골프도 ‘하루는 맑음 하루는 흐림’을 반복했다. 그에 따라 백악관의 기후도 변덕을 부렸다.

아이젠하워가 주로 이용하던 골프장은 버닝트리(Burning Tree)다. ‘불타는 나무’라는 이름이 특이한데, 푸른 잎의 끝부분이 단풍처럼 붉게 물든 나무들이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나뭇가지가 치마처럼 아래로 길게 땅까지 내려와 있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골프장이다. 아이젠하워는 육군참모총장 시절부터 이곳을 자주 이용했다.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골프장이다.

1923년에 문을 연 고급 골프장으로 200여 명의 명사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한국 사람으로는 주미대사를 했던 김동조가 회원이었다. 케네디도 이곳을 많이 이용했다. 아직도 여성 출입이 금지되고 있는 특이한 골프장이다. 그래서 운동을 하다가 더우면 웃통을 벗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도 2012년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전 국무장관을 회원으로 받으면서 ‘금녀의 성’을 해제했다. 반면 버닝트리는 옛 관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아이젠하워 재임 당시 버닝트리는 수요일 오후와 토요일 오전에는 그린피를 올려 받았다. 혼잡을 줄여서 아이젠하워가 좀더 여유롭게 골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특별 배려였다.

여성 출입 금지는 골프가 처음 생긴 스코틀랜드에서 기원했다. 15세기에 골프가 시작되어 곧 번창했고, 남녀가 모두 골프를 즐겼다. 해가 질 무렵 보통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준비하고 남자들은 선술집에 모였다. 거기서 그날의 게임 이야기, 일과 가정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이렇게 친해진 사람들이 골프클럽을 만들었다. 첫 골프클럽이 1744년에 에든버러 근교에 생긴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Honorable Company of Endinburgh Golfers)다.

이 클럽은 지금도 여성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뮤어필드(Muirfield)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두 번째 클럽이 1754년에 구성된 로열 앤드 애인션트 골프클럽(Royal and Ancient Golf Club: R&A)이다. 이 클럽은 미국골프협회(USGA)와 함께 골프 규칙을 만들고 관리하는 곳이다. 이곳도 오랫동안 여성을 회원으로 받지 않았다. 이처럼 골프클럽들은 초기에는 여성들이 배제된 상태로 운영되었고, 그 전통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다가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에게 개방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옛날 전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골프클럽들이 있긴 하다.

미국의 1만 6,000여 개 골프장 가운데 20여 곳이 지금도 여성을 출입시키지 않고 있다. 스코틀랜드에도 뮤어필드와 함께 로열 세인트 조지가 아직 남성 전용으로 남아 있다. 전통을 지킨다고 하지만 비판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숫자는 차츰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초의 골프장인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도 2007년까지는 여성을 출입시키지 않았다. ‘개와 여성은 출입금지(No dogs or women allowed)’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회원들 사이에서 골프는 ‘남성 전용, 여성 금지(Gentleman Only, Ladies Forbidden)’ 운동이라는 말이 있었다. ‘Girls Off(여성은 저리 가)’를 줄여서 golf라고 한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브리티시여자오픈을 개최하면서 여성을 허용했다. 2014년 9월에는 ‘개와 여성은 출입 금지’ 간판도 뗐다.

2015년 2월에는 이 골프장을 운영하는 로열 앤드 애인션트 골프클럽이 정식 회원으로 여성을 받아들였다. 영국의 앤 공주,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 메이저 4승을 이룬 영국의 로라 데이비스, 스코틀랜드 여자 아마추어대회 7승을 이룬 벨 로버트슨, LPGA 흑인 선수 르네 파월, LPGA투어 창립자 중 하나인 루이즈 서그스, 선수 출신으로 국제골프연맹(IGF) 회장을 역임한 랠리 시가드 등 7명이 골프 성지의 첫 여성 회원이 되었다. R&A는 2018년까지는 여성회원을 15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여성들이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통령도 많이 하고 있는데, 아직도 못 들어가는 골프장이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골프장이 많고 생긴 배경과 발전의 역사가 다 다르기 때문에 특이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골프장이 여전히 많기는 하다.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세미놀 골프클럽은 거장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를 멤버로 받아주지 않아서 유명해졌다. 이유인즉슨 투어 프로는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는 운영 규칙 때문이었다. 벤 호건(Ben Hogan)은 회원이었는데, 그런 규칙이 생기기 전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CC는 할리우드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연예인은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 활약했던 배우 로버트 스택(Robert Stack)은 어릴 적에 부모를 따라 이 골프장에서 공을 쳤는데, 영화배우가 된 다음에는 출입할 수 없었다.

오거스타 '아이젠하워 코티지'
아이젠하워는 주말을 이용해 오거스타 내셔널에도 자주 갔다. 재임 8년 동안 210번 갔다. 8년이면 주말이 400여 번 되는 거니까 2주에 한 번은 주말에 오거스타에 갔다는 말이 된다. 그곳 10번홀 부근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골프장 회원들이 15만 달러를 모금해 아이젠하워를 위해 지어준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아이젠하워 코티지(Eisenhower Cottage)라고 불렀다. 오거스타에서 자주 골프를 하다 보니 자신의 애칭인 ‘아이크(Ike)’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와 연못까지 생겼다.

17번 홀에 커다란 미송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높이가 20미터, 티박스에서 앞으로 192미터 지점 약간 왼쪽에 있었다. 아이젠하워가 공을 칠 때마다 공이 이 나무에 걸렸다. 참지 못하고 “저 나무 좀 없애줄 수 없겠소?” 하고 클럽의 회장 클리퍼드 로버츠Clifford Roberts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다음부터 그 나무에 아이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나무는 100세 넘게 살다가 2013년 겨울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었고, 결국 2014년 초에 베어졌다.

‘아이크 연못’은 아이젠하워가 제안한 위치에 연못을 조성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아이젠하워는 라운딩을 마치고 거기서 낚시를 하곤 했다. 아이젠하워의 또 다른 취미가 낚시였다. 둘 다 시간 많이 드는 스포츠였는데, 이 두 가지를 다 하면서 군의 최고 지도자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언젠가는 아이젠하워가 오거스타 내셔널에 갔는데 너무 어린 흑인 아이가 캐디로 일하고 있었다. “일을 하기엔 너무 어린 것 아닌가?” 하고 그가 지적했다. 골프장은 홈스쿨링으로 그 아이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아이젠하워의 골프 실력은 90타 정도. 워낙 많이 치다 보니 70대 타수를 기록한 것도 10여 번 된다. 그토록 자주 골프를 한 것 치고는 실력이 출중한 편은 못되었다. 특히 퍼팅이 약했다. 하지만 80~100야드(73~91미터) 정도의 숏게임은 좋은 편이었다. 홀인원은 딱 한 번 했다. 77세이던 1968년 팜스프링스 세븐 레이크스(Seven Lakes) 골프장 13번 홀에서 9번 아이언으로 친 것이 홀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고는 이듬해 사망했다.

그의 골프에 대한 애정은 PGA 62승을 기록한 전설의 골퍼 아널드 파머(Anold Palmer)와 함께 1950~1960년대 미국의 골프 붐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 가면 미국역사박물관이 있다. 거기에는 대통령관이 따로 있다. 대통령들이 쓰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대통령이 들고 다니던 낡은 가방,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즐겨 쓰던 모자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필자도 2014년에 자료 수집 차 워싱턴에 갔다가 들렀다. 아이젠하워 코너에는 뭐가 있나 궁금해서 다가가서 유심히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즐겨 쓰던 골프채와 골프백이 주요 유품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전쟁 영웅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의 자그맣고 귀여운 골프백이다.

안문석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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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통령과 골프에서 발췌, 저자 안문석 / 도서출판 인물과사상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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