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부르짖으며 자기 전통을 버리고 서구열강의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우리 한국도 그 당시 일본의 사례를 좇아 좀 더 잘 살아보려는 욕구로 일본처럼 서구의 과학문물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전통을 버리고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에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것은 모두 하찮은 것이고 서양 것만 비교적 앞선 문물이라 숭배 시 했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소중화와 일본 식민지 그리고 서구 열강들의 문화침탈 등으로 이 땅은 정체성을 잃고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 것은 건질 것이 없다. 하찮은 미개의 문물이다. 미신이다’ 등등 하등 국민으로 만든 일제의 식민사관에 젖어들고 말았다. 우리 것을 인정하기 위해선 으레 외국 사조와 문법을 가져와서 대입해야 했고 그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버려야 했다. 어떤 과학 문물적인 것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1만년이나 이상 되는 오랜 정신문화적인 것까지도 팽개친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이 1만년 이상 쌓아온 민족의 문화와 체험으로 걸려서 획득한 문물들을 한꺼번에 내치고 말았다. 다른 여러 가지 사례가 있겠지만, 우선 한글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문학을 다루는 문학지로서 문자를 활용하기 때문에 우리글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제대로 된 언어를 활용하지 못하면 역사성의 단절과 민족 정체성의 혼란이 가중되고 결국은 국민들은 우둔화정책의 희생물이 되고 말 것이다. 옛날부터 있어온 우리의 문자체계를 세종 때에 다른 어느 문자보다도 체계적으로 정립한 차원으로 보면 된다. 서글에 음을 단 것이 말 그대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글자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추구하는 음양의 이치처럼 문자체계는 음양의 보완체계임을 알아야 한다.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으로 인해 수천 년간 내려온 우리말 한국어가 그 온전한 모습을 잃어감에 따라 국어생활과 정신문화가 황폐화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지고 있다. 우리말 한국어는 고유어와 한자어로 구성돼 있고, 고유어는 25.5%에 그치는 반면 한자어는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말의 한자어는 원칙적으로 한자라는 글자로 적고 그 한자로 적힌 한자어를 한국어의 발음으로 읽어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된다” 이에 대해 한글단체들은 ‘시대를 역행하는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는 “외국어로서의 한문이 아니라 한국어로서의 한자를 정규교과에서 가르치되, 한글전용이나 한자병용은 개인의 판단에 따르면 된다.”고 반박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전용론’을 발표, 강행했을 때 대전 충남대의 박정기 총장 등의 반대 시위가 있었다. 혹자는 ‘무식의 소치’라고 화를 터트렸다. 이는 ‘유럽 지식인에게 라틴어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앞으로 한국문화와 신세대의 인문학이나 철학적 사유력(思惟力)에 큰 빈곤이 올 것이다.’라고 예언 했는데 결과는 염려 그대로 됐다.

주시경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했다. 이러한 어둔한 어문학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어는 나라를 좌지우지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시경의 이 말은 ‘한글전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훈민정음을 ‘한글’로 명칭을 바꾼 것도 주시경의 작명으로 공식 인정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문자 생활은 서글(書㓞-韓字와 俗稱漢字)과 훈민정음(訓民正音, 속칭 한글) 두 개의 문자를 사용해 온 특수한 상황이다. 광복 이후 문자 생활은 주시경의 염원대로 한글(訓民正音) 전용의 방향으로 진행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서글(韓字와 俗稱漢字) 병기와 한글(訓民正音)전용에 관한 논쟁이 일각에서 계속되고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우정 공로자 홍영식(洪英植)과 같은 마에시마히소까(前島密)는 일본 근대 우정(郵政)의 공로자이다. 그가 화폐제도를 견학하기 위해 유럽에 갔을 때 로마자의 간편한 것만 보고 게이오(慶應) 2年(1866년)에 국자개량(國字改良)을 제창했다. 그 후 메이지(明治) 2년(1869년)에 그것을 계승해 여러 사람에 의하여 문자개환론(文字改換論)이 대두 됐다. 그 후 明메이지 6년(1873년)에 가나(カナ) 전용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하나도 시행되지 않았다. 아마 원안대로 시행됐다면 지금의 일본은 없을 것이다.

지나(支那-현 중국)는 어떠한가? 서글(書㓞)을 번체자(繁體字)라 하여 간체자(簡體字)로 바꾼 중국도 뒤늦게 간체자의 폐해를 알아차리고 당황하고 있다.

세 나라가 공통문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한글(訓民正音)전용 정책으로 비교적 두 나라보다 ‘유식한 문맹’이 된 성공적 사례가 됐다. 이것은 저들 두 나라보다 더 빨리 근본을 상실할 수 있다는 불길한 조짐이다. 얼마 전에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글로만 표기하도록 되어 있는 정부공문서 표기규정을 개정, 해석상 혼란의 소지가 있는 용어 등은 한자(書㓞)를 병기하도록 하고 또한 한자(書㓞)문화권과의 교류의 증대를 위해 고속도로 표지판에만 적용되는 한자병기를 일반도로표지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 말은 한글 표기만으로 문자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만시지탄이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한자교육이 전통문화의 이해의 폭을 넓이는 첩경이니 고전, 역사, 사회과학 등 전통 문화와 관련된 학문 연구에서 한자는 여전히 중요한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언어만 보아도 문자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는 한글로만 표기할 때 보다 한자(書㓞)를 덧붙여 썼을 때 그 의미를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만 썼을 때 생기는 의미혼란을 바로잡고, 우리말 어휘 중 80% 이상이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고, 동음이의어가 많아 한글로만 표기할 경우 한참 생각해야 뜻이 파악되는 경우를 해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한글학회’ 등 우맹(愚氓)정책 옹호론자들은 여전히 주시경의 망상(妄想)을 답습하고 있다. 몇 년 전 광화문 복원 경축식 즈음에 광화문 현판(懸板) 자체(字體)를 놓고 시위를 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글 휘호(揮毫)를 달아야 한다며 1000여 명의 설문조사 응답자 중 700여 명(약 70여%)이 동의했다고 한다. 이유인 즉 박 전 대통령이 쓴 휘호의 역사성 복원 차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1865년 광화문 중건 당시 공사 감독관이었던 좌포도대장 임태영[任泰瑛]의 현판글씨를 디지털 영상복원한 것은 역사성이 없다는 말인가? 역사성을 따지자면 선대(先代)의 인물이 앞서는 게 순서가 아닐까? 그리고 한글휘호로 써 놓으면 그 뜻을 알 수 있을까?

다수가 주장하면 진리가 되는 망령(妄靈)된 제도가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놓았다. “다수가 선(善)이 되는 사악한 교리가 이 나라와 백성을 망령된 우맹으로 길들이고 있다. 소수가 주장하면 다수의 함성에 함몰되어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애꾸눈 원숭이 나라에 두 눈 멀쩡한 원숭이가 불구로 보이는 세상이다. 애석한 일이다. 나라에 기준이 없다보니 그저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 됐다”고 정윤훈 문자연구가는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제 三世 단군(檀君) 가륵(嘉勒)(B.C. 2181) 경자 2년(庚子 二年)에 천제(天帝)는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여 구음(口音)이 통하지 않는 폐단을 다스리며 정했다. 이미 환웅(桓雄)년대(BC. 3897)에 문어체(文語體)인 서글(書㓞-眞書 곧 神篆)이 있었지만 구어체 글자(口語體 㓞字)가 없어서 백성이 바른 소리로 말하고 쓸 수 없었다. 구어체인 가림토(加臨土) 문자는 세종 조에 반포된 훈민정음의 모체이다. 이로써 우리는 문어체 문자와 구어체 문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됐다.

이 두 문자는 서로 배치되는 게 아니고 조화되어 더욱 폭 넓은 어문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한글(訓民正音)은 표의문자(書㓞)의 발음기호이다. 한글은 별개의 문자가 아니라 구결(口訣, 한문 문장의 이해를 돕고,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해 한문 구절 아래에 달아 읽는 토)이다. 이두의 폐해를 없애는 대단한 문자이다. 결코 문어체 글자와 구어체 글자로 상극(瘠剋)하는 문자가 아니고 상생(相生)하는 문자이다. 서로를 보완해 주는 합리적인 글자이다.

세계에서 우리만이 소유한 특별한 유산이다. 우리 민족이 표의문자(書㓞)와 표음문자(訓民正音)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고 백성이다. 우리 두뇌가 우수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글은 표의, 표음 그 어느 문자도 없는 나라와 백성에게 글(㓞)을 보급할 수 있는 호재(好材)가 된다. 이 두 문자 중에 어느 것이 더 귀하고 덜 귀한 차등을 둘 수 없다. 문어체는 적은 분량의 글자로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구어체는 생활을 더욱 쉽고 간편하게 전달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느 한쪽을 취하거나 버릴 수 없는 상호보완적인 훌륭한 문자이다. 단지 세종이 서글에 발음을 단 것이 훈민정음으로 세상이 다른 어느 나라의 글자보다도 더 많이 체계화 시켰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세종이 훌륭한 업적을 세웠다고 말할 수 있다. 불완전한 발음의 영어보다도 가장 과학적인 문자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문물을 우리는 우리 거라고 홀대하고 키워갈 생각은 않고 아직 최고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남들이 우리글이 세계 최고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우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 병을 어찌 고쳐야 할지 안타깝기만 하다.

한자는 우리의 선조인 동이족이 창조했다는 학설이다. 한자의 시원인 은문(갑골문자)을 대륙에 동이족이 세운 나라 가운데 하나인 은나라에서 만들었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임어당 등 중국의 석학들이 우리 민족의 글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래서 한자(漢字)라 하지 말고 동방문자라고 부르자고도 하고 있지만, 이를 서글(書㓞)로 부르고 있다.

서글 역시 우리글이다. 이를 중국의 글이라고 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동북공정에 도움을 주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의 선조는 이토록 지혜롭고 영명하신데 후손은 이리도 무지몽매할까! 한글전용 후에 서글(書㓞-표의문자)을 모르게 되면 우리의 뿌리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 역사는 무엇으로 복원하고 바로잡을 것인가? 표의문자를 한글(訓民正音)로 토를 단 글자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자. ‘한글’표기만으로 과연 얼마나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 표의문자를 전혀 모르는 세대가 도래했을 때의 혼란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한글’을 서글(書㓞) 문자로 복원해보자.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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