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폼페이유적지의 대중목욕탕

로마인의 지나치고 화려하게 목욕을 즐긴 사치문화가 로마멸망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명절 뒤라 며칠 전에 고향친구를 만났습니다. 반갑게 환담을 나누다가 친구가 문득 고교동창 T․J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달포 전에 술 취한 목소리로 필자에게 전화안부를 전해왔다고 대답했더니 갑자기 T․J의 목욕사건을 꺼냈습니다. 수줍음 많던 청소년시절의 묻힌 기억이라 새삼 재미있었습니다. 오늘은 목욕이야기를 하겠습니다. 

T․J는 고교시절 필자의 룸메이트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고1 때 필자와 배짱이 맞아 집으로 데려가 방을 같이 썼던 하숙생이었습니다. 울릉도에서 포항으로 유학을 온, 공부도 잘하고 인물도 꽤 훤한 친구였습니다. 성격도 원만하고 장점이 많은 친구인데 한 가지 흠이 목욕탕에 가기를 싫어했습니다. 그 당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목욕탕에 가서 월례 목욕을 하는 것이 풍속도였습니다. 청소년시절이라 부친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목욕탕에 갔는지라 목욕탕에 가는 날이면 의례히 T․J를 조르고 졸라서 데려갔습니다.

친구들과 목욕탕에 가자고 약속한 어느 날이었습니다. T․J가 보이지 않아 한참이나 찾았더니 부엌에서 혼자 몸을 씻고 있었습니다. 오늘 목욕탕 가는 날인데 왜 씻고 있냐고 필자가 어이없어 하니까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지난 달 목욕을 안가서 때가 많아 창피해서 목욕탕에 가기 전에 미리 때를 미는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입이 가벼웠던 필자가 이 해프닝을 다른 목욕탕멤버들에게 폭로해서 여태까지 친구들 사이에 ‘T․J예비목욕사건’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목욕문화가 일상화되지 않아 너도나도 모두 몸에 때가 많았던 시절의 일입니다. 

『논어』의 「헌문(憲問」편에 공자가 목욕을 하고 조정에 나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임금들도 국가의 중대사나 제례를 앞두고는 반드시 목욕재계를 하여 심신을 단정히 하였습니다.

필자가 연전에 이탈리아의 폼페이유적지에 가서 큼직하고 화려한 목욕탕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로마인이 지나치게 화려하게 목욕을 즐긴 사치문화가 로마멸망의 원인 중 하나라고도 들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원죄를 씻고 새롭게 태어나는 의식으로 세례(洗禮)의식을 베풀기도 합니다. 이처럼 목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오랜 문화이고, 청결 외에 때로는 정치적·종교적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매한 목욕도 있었습니다. 

▲ 16세기 명대 구영(仇英)의 귀비출욕도(貴妃出浴圖)

고대중국의 최고미인으로 일컫는 양귀비(楊貴妃)가 관련된 화끈한 목욕 일화가 전해집니다. 옛날 중국에는 ‘세삼(洗三)’이라는 풍속이 성행하였습니다. 갓난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째에 친지들을 초청하여 영아를 씻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영아의 복을 빌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삼’이 참으로 애매합니다.

양귀비가 자신의 다 큰 양아들 안녹산(安祿山)에게 베풀었으니까요. 당나라 현종(玄宗)의 양귀비에 대한 총애는 끝이 없었고, 변방을 지키던 절도사(節度使) 안녹산도 자식을 대하듯 총애하였습니다. 당 현종은 양귀비에게 이 “착한 아이(好孩兒)”를 양아들로 들이라고 종용하였습니다. 이로써 양귀비는 안록산의 양어머니가 되어 서로 오고갈 명분이 생겼습니다. 

『통감기사본말(通鑒紀事本末)·안사지란(安史之亂)』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천보(天寶)10년(751) 정월 3일이 안녹산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이 지난 지 사흘째 날에 양귀비가 안녹산을 특별히 불러서 자기보다 열 몇 살이나 연상인 “다 큰 아들(大兒子)”을 위해 ‘세삼’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양귀비는 궁녀에게 명하여 안녹산을 커다란 욕조에 넣고 목욕을 시킨 다음 비단 강보로 안녹산을 싸서 꽃가마에 태우고 후궁 정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녹아, 녹아”라고 부르며 즐겁게 장난쳤다고 합니다. 참으로 애매한 목욕에 애매한 모자관계였습니다. 나머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 18세기 청대 강수(康濤)의 화청출욕도(華清出浴圖)

필자가 어릴 적엔 명절 전에 부친과 함께 목욕탕 행차는 필수였지만, 이제는 동네에 목욕탕도 없거니와 가 본 기억도 아득합니다. T․J도 그때 그 시절 ‘예비목욕사건’이 그리운 추억일 것입니다. 울릉도로 가던 연락선에 탄 모습을 보고 배웅하고 돌아섰지만 풍랑이 심해 앞바다에서 뱃머리를 돌렸다며 몇 번이고 다시 불뚝 나타나 “난감하지?”를 외쳤던 친구였는데! 전화로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몇 년째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아직 명절 끝자락이니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 아득한 추억을 함께 나누길 축복합니다. 할 수 있다면 함께 목욕탕에 가서 묵은 회포를 풀면 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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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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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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