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 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박재삼 시인,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전문, 춘향의 마음(1962)-

[생각 하나]
붉게 물든 저녁놀 강물의 아름다움을 울음이 타는 강으로, 그리고 소리 죽은 가을 강처럼 감각적으로 묘사되는 사라져 가는 슬픔과 내면의 슬픔이 극도로 절제된 모습을 본다. 보면서 사랑은 고독과 그리움이고 한(恨)으로 표출된다. 공감(共感)이다.

시(詩)는 서정적이다. 시각적이면서도 청각적이고 이처럼 이미지는 교묘하게 춤추면서 공감각적인 절묘한 하모니를 이끌어 낸다. 반복과 리듬이 만나는 효과적인 표현도 맛깔스럽다.

박재삼 시인(1933~1997)은 1953년 ‘강물에서’가 문예에 추천(모윤숙)으로, 1955년 ‘섭리(유치환)’와 ‘정적(서정주)’으로 추천받아 등단했다. 한국 전통 서정적인 한(恨)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시집으로 춘향이 마음(1962), 햇빛 속에서(1970), 비 듣는 가을나무(1981),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1990) 등이 있으며 현대문학상(1956), 한국시인협회상(1977), 노산문학상(1982), 한국문학작가상(1983), 중앙일보 시조대상(1986)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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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문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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