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접하는 골프에 신비한 매력에 끌렸다. ‘이렇게 하는 게 골프구나’... 두말 않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차근차근 익혀나갔다. ‘윌슨X 31’ 무언의 선물이었다. 이제부터 골프를 해도 좋다는 의미였고 열심히 하라는 권유이기도 했다.

[골프타임즈=이종민 칼럼리스트] “종민아, 골프 한번 해볼 생각 없냐”

어느 봄날 아침, 아버지는 내게 골프란 말을 꺼내셨다. 그 무렵 골프를 무척 즐겨하셨던 아버지는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으레 골프백을 차에 싣고 외출하시곤 했는데 나는 골프가 뭔지 잘 몰랐다. 가끔 마당에서 아버지가 스윙연습 하시는 걸 본 것이 전부였다.

“이걸 신어봐라.”

아버지는 내게 골프화를 내주시고는 무작정 따라 오라고 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버지는 당시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골퍼 중의 한 분으로 늘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셨다. 이 무렵 난 연세대학교에서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선수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타고난 건강체질은 아니었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고 약간의 소질이 있긴 했지만 아이스하키를 계속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아신 아버지는 나를 골프장으로 이끌어 주신 것이다.

이날 아버지를 따라 간 곳이 군자리 골프코스였다. 파란 잔디 위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하얀 공, 그 잔디를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수목들은 온통 힘찬 푸른빛을 발산하고 있었고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사실 처음엔 골프가 재미있어서라기보다 아버지를 따라 골프장에 가는 것이 좋아서 다니는 정도였다. 그 당시 시내엔 골프연습장도 귀했지만 학생신분으로 감히 골프를 하겠다고 나설 분위기도 못됐다. 연습장이래야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다. 군자리 골프코스에 있는 골프연습장과 명동 회현동 부근의 당시 ‘대연각’ 빌딩 자리에 있었던 연습장, 그리고 미도파 옥상에 있는 연습장, 남산자유센터 연습장이 전부였다. 뚝섬 마사회 트랙 안 연습장은 한참 후인 1968년이 되서야 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좋아하는 골프였기에, 내게 골프를 가르치기로 마음을 정하셨는지 골프장을 가실 때는 수시로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3형제 중에서 유독 막내인 나를 데리고 군자리 골프코스에 들르시곤 했다. 형님들도 골프를 몰랐을 때다. 그때만 해도 골프를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골프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때라 골프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 역시 골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골프가 뭔지 사전 지식을 습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단지 골프를 하시는 아버지께 배우고 여쭈어볼 뿐이었다.

핸디캡 9를 구사하는 싱글 핸디캐퍼였던 아버지께서 기술은 물론 골프의 룰과 매너 등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셨고 나 역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100%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했던 나는 아버지 말씀을 거스르지 않았다. 더욱이 거부란 생각조차 못했다. 아버지가 아들만 3형제를 두어 스파르타식으로 키우셨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처음 접하는 골프에 대한 신비한 매력에 끌렸던 것 같다. ‘이렇게 하는 게 골프구나’라는 생각이 들 뿐 두말 않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차근차근 익혀나갔다.

나는 연습에 몰두했고 골프에 빠져 들어갔다. 아버지 골프채를 그때그때 빌려쓰곤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는 애지중지 쓰시던 ‘윌슨X 31’이란 골프클럽을 내게 물려주셨다. 내가 골프에 흥미를 갖고 또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판단하시고 선뜻 당신이 애용하시던 클럽을 내게 물려주신 것이다. 자식의 의중을 꿰뚫어 보신 것일까, 무언의 선물이었다. 이제부터 골프를 해도 좋다는 의미였고 또 열심히 하라는 권유이기도 했다. 막상 클럽을 손에 쥐었을 때 송구스럽기도 했지만 기분은 하늘을 나는 듯 했다. 사실 좋고 나쁘고를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때는 클럽이 아주 귀한 때라 클럽을 갖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처음 시작이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갖는 일이다. 아버지는 골프장에서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더러 정중하게 예를 갖춰 인사하라 시키셨다. 이를테면 골프를 통해 예절교육을 시키신 셈이다. 시작부터 어른들과 함께 한 플레이라서 깍듯한 예를 갖추느라 무척 어려웠지만 절도 있는 골프의 첫 걸음마였다. 이처럼 골프에 있어서 매너와 룰은 아버지로부터 또 어른들로부터 직ㆍ간접으로 영향을 받아 체득한 체험적인 룰이기에 자연스레 몸에 스며들었다.

이렇게 해서 내 골프 인생이 시작됐고, 또 골프를 즐기고 있어 나의 골프 스승인 아버지께 지금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종민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