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세희의 ‘아무것도 아닌 것’ 책표지.

[골프타임즈=정수현 기자] ‘어렸을 때는 소백산이 큰 산으로 알았다. 자라서 외지로 나왔을 때는 더 어마어마한 산을 보았다. 소백산 이름조차도 태백산보다는 작다고 여겨 까맣게 잊혀버렸다. 나이 들어서 시인이 되고난 뒤 가 본 그 산이 그 자리에 있는데 엄청 컸다.’ 저자 박세희 시인의 시 ‘소백산’ 우화를 풀어 보았다. 그 시가 우리 삶에 시사하는 점이 컸다. 우리의 삶이 모두 이속에 다 묶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박세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도서출판 등대지기에서 출간됐다. 그간 써 놓았던 48편의 파닥이는 시를 모아 감칠맛 나게 요리해서 문학의 난전에 펼쳐 놓았다.

시인은 <자서>를 통해 ‘부끄럽고, 부끄럽다/시를 쓰는 날들이 부끄럽고/시를 쓰지 않는 날들이 부끄럽다’ 썼듯 시에 대한 자의식이 꾀나 강한 듯하다.

이번 시집을 펼쳐보면 박세희 시인의 시는 상당히 경쾌하면서 은근한 풍자의 맛이 시편 도처에 스며 있다.

‘개, 똥을 치웠다//개, 밥을 주었다//개, 목욕을 시켰다.//할 일을 다 했으니//내일 마감인 동인지 원고를 정리하려고/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았다//엉덩이를 방석위로 들이밀며/나보고 자리를 비켜달란다//지가 옥석을 가려보겠단다/개가,//이런 개같은’ -이런 개 같은 시 전문- 얼마나 시 같지 않았으면 개가? 조악한 시단에 대한 은근한 단죄이다가 결국 ‘지하철 분당선에서 느닷없이 /엉덩이 훌러덩 내놓고 앉아서/똥을 쌌다나? -중략- 무명으로 유명한 시인/똥 싸는 일보다 못한 시/희야, 그래도 시나 쓰자’ -시 똥이나 싸라 일부- 라며 자신을 다그치는 것은 시를 쓰는 일에 대한 태만과 시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 큰 목소리가 되고 있다. 분당선이 똥선(?)이 안 되기 망정이지 음차는 같은 것이라서 웃음이 키득키득 나온다. 똥이 있는 데는 또 개가 있기 마련인데… 일면 그녀의 시를 읽으면 시니컬하면서도 재미가 있고 살풋 에로티시즘이 묻어나기도 한다.

경기대 윤향기 교수는 박세희 시인의 작품해설을 통해 카오스에서 스스로 탄생한 ‘가이아 시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는 지구의 생물들에게 어머니처럼 먹이고 키워주는 최초의 신이다. 이어 ‘박세희 시인은 고집이 세다. 그녀는 마초를 경계하다 마초 짓을 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소로우처럼 자신의 일관된 신념으로 홀로 가는 이의 진정한 고집을 가진 이 시대 드문 여장부’임을 시법을 통해 피력하고 있다.

한편 저자 박세희 시인은 계간 『문학에스프리』 발행인으로 제1시집 『사랑과 혼숙하다』와 제2시집 『어느날 나는 순례가 되었다』를 펴냈다.

∴ 박세희 / 도서출판 등대지기 / 1만원

정수현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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